슈바이처 박사가 저술한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 예수의 메시아직과 수난의 비밀"을 읽으면 아래와 같은 많은 의문들에 대한 (슈바이처 박사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설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는 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겼는가?
세례 요한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했는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누구라고 생각했는가?
예수는 세례 요한을 누구라고 생각했는가?
예수는 왜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말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했는가?
왜 사람들은 예수가 엘리야라고 생각했는가?
주기도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는 왜 열두 제자를 이스라엘의 각 고을로 보냈는가?
예수가 곧 올 것이라고 믿었던 하나님의 왕국은 왜 오지 않았는가?
예수는 왜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죽음을 자청했는가?
최후의 만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의 수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엇을 기도했는가?
예수는 무슨 죄로 사형을 당했는가?

 


이 책의 마지막 10장에서 슈바이처는 복음서에서 모든 신화적/신비주의적 요소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역사적/합리적 관점에서 본 예수의 생애를 요약합니다.
 따라서 처녀 탄생이라든가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이 예수의 생애 요약에서 빠져 있습니다. 슈바이처의 예수의 생애 이야기는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세례 요한의 출현부터 시작해서 예수의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또 물 위를 걷기라든가 적은 음식으로 군중을 먹인 이야기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합니다.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종말론'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왕국(즉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했던 새로운 윤리도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직전에 그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임시적 윤리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인간이 세속적인 속성이 사라지므로 더 이상 윤리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10장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슈바이처의 연구의 최종 결과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제가 직접 번역하였습니다. 일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제외했고 원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구들을 일부 추가했습니다. 따라서 이 번역은 직역이 아닙니다. 굵은 글씨로 쓴 중간 제목들은 제가 붙인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의 생애 요약

 

"예수의 생애"는 그의 마지막 몇 개월로 한정된다. 그는 여름 파종기에 목회를 시작했고 다음 해 유월절(유대력 1 14)에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전체 공식 목회 기간은 불과 몇 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첫 번째 목회 기간은 파종기에서 수확기까지였다. 두 번째 목회 기간은 예루살렘에 출현한 시기였다. 그 사이에 가을과 겨울에는 이교도 지역에서 제자들과 홀로 지냈다.

 

세례 요한의 출현

예수가 나타나기 전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웠음과 메시아가 출현하기 직전에 강력한 권능을 지닌 선구자(Forerunner)가 올 것을 예언했다. 선구자가 나타나면서 성령 퍼붓기(pouring out of the Holy Ghost)가 일어날 것이다. 선지자 요엘(Joel)에 따르면 성령 퍼붓기는 다른 기적들과 함께 최후의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조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 선구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기적의 시대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의견은 그가 선지자라는 것이었다.

 

예수의 메시아 자의식

예수의 초기 성장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의 존재의 비밀, 즉 자신이 하나님이 메시아로 예정해 둔 사람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지위가 밝혀질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숨은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산고를 겪어야만 한다. 또한 지지자들과 함께 최후의 수난을 겪으면서 자신의 자격을 입증하고 정화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기대가 메시아 시대 이전의 수난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의 메시아 자의식에는 처음부터 고난에 대한 생각이 포함되어 있었다. 속세의 사건은 예수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메시아 비밀로 인해서 그는 여전히 인간들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미 세상을 초월했다.

 


예수의 설교의 핵심: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가 사람들 앞에 출현해서 선언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는 요한의 설교와 같았다. 다만 예수는 기적을 통해 확인시킨다는 것만 달랐다. 그가 메시아라는 비밀이 그의 모든 설교에 담겨 있지만 아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그는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그의 윤리적 사상도 "현재와 미래(Now and Then)"라는 대비가 지배했다. 하나님의 왕국을 향한 회개, 그리고 의로움이 하나님의 왕국을 물려받을 자격을 입증한다. 이 의로움은 율법보다 더 높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세례 요한까지만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과 더불어 선구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즉 지금은 하나님의 왕국이 밝아오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윤리적 설교와 비유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왕국의 비밀

따라서 미래의 메시아로서, 그는 더 높은 도덕을 설교하고 실천해야만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윤리적 설교 뒤에는 하나님의 왕국의 비밀이 숨어있다. 인간 공동체가 하나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도덕적 쇄신을 달성한다면, 이를 통해 하나님의 왕국의 실현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 위대한 비밀 속에서 개인의 윤리와 사회적 윤리가 융합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의해 파종 후에 신비스럽게 풍성한 수확이 뒤따르는 것처럼, 인간의 도덕적 쇄신에 의해, 그러나 인간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왕국도 실현될 것이다.

 

또한 예수의 비유에는 시기적인 일치에 대한 암시도 내포되어 있다. 예수는 파종기에 설교를 시작했고 수확기에 하나님의 왕국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연은 하나님의 시계였다. 최후의 파종과 함께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시계를 맞춘 것이다.

 

윤리적 종말론

하나님의 왕국의 비밀은 지상의 선지자들의 윤리를 천국의 윤리로 변화시킨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도덕적 변화(moral conversion)를 이루어야만 최후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예언했던 것이다. 예수는 다니엘의 계시를 선지자들의 윤리와 결합시켰다. 그의 세계관은 종말론적 윤리(eschatological ethics)라기 보다는 윤리적 종말론(ethical eschatology)이었다.

 

징조와 기적도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웠다는 설교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도 변명을 할 수 없다. 징조와 기적은 사악한 권력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히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또 하나의 비밀, 즉 하나님의 왕국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징조들을 사탄의 권력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비유를 들어 그 비밀을 이야기했다. 예수는 자신의 행동으로 사악한 권력을 속박한다. 그것은 마치 강한 자의 재산을 뺏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그를 결박해서 무력화 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1:29).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을 내보낼 때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설교하라는 지시와 함께 불결한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악의 세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최후의 수난에 대한 경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설교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메시아 이전의 수난에 대한 경고였다. 믿는 자들은 그와 함께 시험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험의 시기에 그들은 세상의 권력의 마지막 공격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왕국의 선민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 공격은 예수의 인격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의 편을 들어야 한다. 인자는 그들이 예수의 편을 들었는지 여부에 따라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핍박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1).

 

하나님의 왕국의 임박에 대해 물어보는 세례요한의 제자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6). 벳새다에서 바닷가에서 만찬을 축복한 다음날 아침에 그는 군중들에게 자신이 타락한 세상에서 멸시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편을 들라고 호소하였다. 그들의 복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수난의 의미

이 수난에는 시험뿐만 아니라 속죄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메시아 각본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의 지지자들에게 현세에서의 죄에 대해 속죄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 각 사람이 그곳에서 차지할 장소를 결정하신다. 하나님의 왕국이 실현되기 직전에 올 최후의 수난이 예언되어 있으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최후의 수난의 필요성은 단지 상대적일 뿐이다. 하나님은 최후의 수난을 폐기하실 수도 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3가지 탄원은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고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이질 것을 탄원한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고(즉 최후의 수난을 겪지 않고) 악의 권세에서 직접 구원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

 

첫 번째 목회 기간

첫 번째 목회 기간 동안 예수는 계속 호수의 북쪽 연안에 머물러 있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그의 활동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그는 호수를 건너서 열 고을(Ten Cities)로 여행을 했다가 나자렛으로 갔다.

 

그가 주요 활동 무대로 삼은 마을에서 그는 믿지 않는 자들을 만났다. 그가 그들에 대해 저주를 한 것이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적대적이었고 예수의 기적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나자렛에서 그는 선지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도들을 이스라엘의 각 고을로 보내다

그러나 그러한 외적인 실패는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와 관련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믿지 않는 고을은 단지 심판을 받을 뿐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의 임박을 가늠하는 또 다른 신비스러운 징조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징조들을 통해 그는 그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나자렛에서 돌아오자마자 사도들을 각 고을로 보냈던 것이다. 수확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제자를 보내다

사도들의 설교와 기적을 통해 예수의 강력한 인격에 대한 명성이 널리 퍼졌다. 이제 성공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감옥에 있던 요한은 그에 대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가 "오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 분"인지 물어보았다. 예수의 기적을 통해 요한은 예수가 자신이 예언했던 권능 있는 선구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기적을 행했고 그의 제자들은 영들에 대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예수가 심판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자신의 편을 들었던 사람만 인정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세례 요한은 그 점에 대해서 확신을 얻고 싶어했던 것이다.

 

선구자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 "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진전되었다."라는 것이 예수의 답변의 요지였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가자 예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로 세례 요한이 생각한 것보다 때가 훨씬 더 앞서 있다고 말했다. 선구자의 시대는 세례 요한의 출현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왕국은 압박을 받고 있다. (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예수는 세례 요한이 바로 예언된 선구자 엘리야라고 말한다. (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사람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요한이 기적을 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아이들과 같다. 이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러나 그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는 세례 요한을 칭송하면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저주한다.

 

하나님의 왕국을 앞당기기 위한 예수의 노력

열두 사도를 보낸 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앞당기기 위한 예수의 마지막 노력이었다. 그들이 돌아와서 성공적인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악령들을 쫓았다고 보고했을 때, 그것은 예수에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의 새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수는 열두 사도가 돌아오기 전에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고을을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따르다

그가 할일은 끝났다. 이제 예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사도들과 함께 혼자 있고 싶어 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북쪽으로 항해한다. 그러나 사도들의 설교로 인해 그와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기 위해 그에게 몰려든 군중들은 해안을 따라 그를 뒤쫓아 왔고 해안에 도달하자 그곳에서 예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가에서의 성찬의식

밤이 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이웃 마을로 보내서 음식을 구하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지금 세속적인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엄숙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보내기 전에 그는 자리에 앉게 하고 곧 다가올 메시아의 성찬을 고대하면서 함께 성찬 의식을 치른다.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기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인 군중들에게 곧 메시아가 될 예수는 신성한 음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천국에서의 향연에 함께할 사람들을 신성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의 메시아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무엇인가 엄숙한 의식이라는 것만 이해했을 뿐이었다.

 

성찬 의식 후에 예수는 군중을 돌려 보냈다. 그는 사도들에게 해안을 따라서 벳새다로 갈 것을 지시했다. 그는 혼자서 산에가서 기도한 다음 해안을 따라 걸어갔다. 신비스러운 위엄 속에서 그들 앞에 서 있었던 성찬식의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제자들은 어두운 밤에 에수의 모습이 나타나자 예수의 초자연적인 유령이 파도를 넘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바닷가에서의 성찬 다음날 아침에 예수는 벳새다에서 사람들과 제자들을 자신의 주위로 모이게 한 다음 자신의 편에 남아 있어야 하며 자신이 모욕을 당하더라도 자기를 부인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거듭 밝히다

6일 후에 그는 3명의 제자와 함께 산으로 가서 혼자 기도를 올렸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그들에게 사자들이 부활하는 시기에 그가 인자의 영광 속에서 드러날 때까지 그 사실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자의 부활 전에 나타나야 하는 엘리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칭송할 때 예수가 했던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선구자 엘리야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제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한 세례 요한이 엘리야였다고 분명히 밝힌다. 인자도 많은 고난을 겪고 멸시를 받을 것이다. 다만 모든 일이 성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의 지연

예수가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왕국은 오지 않았다. 이 최초의 종말의 지연과 연기는 기독교 복음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제 후대의 사람들은 열두 사도의 전도와 관련된 사건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예수와 그의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종말에 대한 강렬한 기대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혼란스럽고 모호하며, 그 경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조차도 몇 가지 사건들은 불가사의한 일로 남아버렸다. 해변에서의 성찬은 예수가 원래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기적적인 음식 나누어주기"로 변질되었다.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다

예수는 게네사렛 지역에 칩거하면서 사도들과 혼자 있기 위해서 바리새인들과 군중들로부터 물러났다. 메시아와 관련된 두 가지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그러한 칩거가 필요 했다.

왜 세례 요한은 메시아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세상의 권세에 의해 처형되었는가! 그리고 징표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왕국이 나타나지 않는가!

 

예수는 성서를 통해 그 답을 얻는다. 하나님은 전면적인 수난 없이 하나님이 왕국을 이루시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광 속에서 통치하도록 정한 사람이 죄인으로 재판받고 형벌을 받음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왕국을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수난이 면제가 되는 이유는 예수가 그들을 위해 속죄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수난 후에 영광의 날이 오면 그 때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 대신 고난을 받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심하다

예수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선택 받은 그를 위해 정하신 운명을 읽었다. 세례요한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바로 그가 어떤 형태로 처형을 받을 것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세상의 권력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눈 앞에서 죄인으로 사형을 당해야만 했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예루셀렘으로 모이는 시기(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다.

 

메시아 비밀을 제자들에게 말하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유월절 순례를 시작했다. 북쪽 지역을 떠나기 전에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에 대해 그들은 엘리야로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벳새다 근처의 산에서 받은 계시를 기억하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의 메시아 비밀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부활의 시기에 인자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대사장과 장로들에게 넘겨져서 유죄를 판결 받고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베드로의 반발

베드로는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해 반발한다. 산에서 계시를 받을 때 그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를 따로 만나서 간절히 호소한다. 그러자 예수는 그를 하나님이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라고 책망한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은 승리로 향하는 장례식 행진이었다. 수난의 비밀 속에는 하나님의 왕국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 뒤를 따라 행진했고, 이 일이 끝난 후에 예수는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겪을 고난에 대해서 슬퍼했지만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감히 예수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생각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예수가 메시아가 된다면 그들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들은 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는 그들을 꾸짖으면서 그가 고난을 겪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굴욕과 희생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왕국에서 통치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자로 최고의 권한을 행사할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대신 속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군중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다

유대인의 땅에 도착하면서 예수의 공적인 목회의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또 다시 군중에게 둘러싸였다. 여리고에서는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에수가 디매오의 아들인 장님 거지를 치유하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갈릴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가 위대한 선구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기쁨에 넘친 군중은 그를 위해서 예루살렘 입성 축제를 준비한다. 예수가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 직전에 오는 선구자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예수에게 호산나라고 외친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말은 하나님의 왕국이 곧 올 것이라는 환호이다. 벳새다 근처에서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연출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을 기대하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왕국이 임박함을 알리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이야기한 비유에 포함된 교훈은 하나님의 왕국의 임박함과 관련이 있다. 그의 설교는 경고의 외침이며, 그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협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그가 메시아인지 여부가 아니었다! 예수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왕국이 임박했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한 것이다!

 

바래새인과 서기관들의 무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임박함에 대해 전혀 무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로마의 권력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주장은 얼마나 생뚱맞은가! 이제 곧 하나님의 왕국이 출현하면, 모든 지상의 통치는 인간의 세속적인 속성과 함께 폐기될 것이다.

 

그들이 시대의 징조를 알아볼 수만 있다면!

예수는 그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첫 번째는 "세례 요한은 어떤 권한으로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예수가 신비스럽게 사람들에게 암시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세례요한이 선구자(엘리야)라는 사실을 알기만 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왕국의 때가 왔음을 알 것이다.

 

두 번째로 예수는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 될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들이 그 답을 말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낮은 자세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일하고 있는 예수가 주님이자 그리스도로 밝혀질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저주하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 암시에 비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많은 학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님을 이끄는 장님 지도자들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준비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닫고 율법에서 하나님의 왕국에 맞는 더 높은 윤리를 유추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피상적인 계율로 하나님의 왕국에 반하고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고가고 있다. 따라서 그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저주한다!

 

그들 중에서도 위대한 계명에 대해 예수에게 물어보고 그의 답을 기꺼이 받아들인 서기관도 있었다. 예수는 그를 "지식이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멀지 않다"고 칭찬한다. 하나님의 왕국이 나타날 때 그는 그 왕국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가 메시아 비밀을 누설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기소할 죄를 찾지 못했다. 성전에 대한 모역적인 언사를 한 행위, 그것이 전부였다. 그 때 유다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비밀을 그들에게 누설한다.

 


최후의 만찬

죽음이 가까워 오면서 예수는 갈릴리 해변 시절과 똑 같은 자신감에 찬 행동을 한다. 죽음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리리 바닷가에서 예수는 믿는 자들과 함께 메시아의 성찬을 기대하면서 신비스러운 만찬을 나누었다. 이제 그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맞이하면서 제자들에게 신성한 음식과 음료수를 나누어 준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엄숙하게 말한다. 이제 곧 그들은 아버지의 왕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두 가지 비유가 수난의 비밀을 암시한다. 예수가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빵과 포도주는 그의 육체와 피이다. 그는 죽음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메시아의 잔치를 이끌어오기 때문이다. 예수의 비유적 표현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그 비유의 목적은 그들에게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수께끼 비유였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경고하고 위로하다

이제 위대한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바닷가에서의 만찬 후에 그랬던 것처럼, 예수는 다시 한 번 혼자서 기도할 곳을 찾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수난을 당할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 날 밤 그들이 모두 예수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성서에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제자들을 위로한다. 부활 후에 그는 그들을 다시 모아서 메시아의 영광 속에서 그들이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던 바로 그 길을 따라 다시 갈릴리로 갈 것이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므로 예수가 겪어야 할 수난도 폐기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믿든 자들을 위해 언젠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이제 그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고난의 잔이 그의 입술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줄 것을 기도한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는 기꺼이 그 잔을 마실 것이다.

 

예수가 체포되고 제자들은 도망가다

세배대의 아들들은 왕좌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예수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고 고통의 세례를 함께 받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정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의 가까이에 머물라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동안 잠이 든 제자들을 두 번이나 깨워서 하나님에게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청하라고 말한다. 세 번째로 예수가 제자들을 깨우러 갈 때 배신자 유다와 그의 무리가 왔다. 예수는 혼자 남고 제자들은 도망갔다.

 

신성모독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죽다

증인들의 청문회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증인들이 물러난 후에 제사장은 직접 예수에게 그가 메시아인지 물어본다. 예수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의 구름을 타고 인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라 예수는 신성모독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유대력 114일 저녁에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먹을 때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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