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라이마루스 이전에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역사적인 개념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사람이 없었다.

라이마루스는 1694년 12월 22일에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동양 언어 교수로 살다가 1768년에 사망했다. 그가 생전에 썼던 책들은 그가 사망한 후에 레싱(Lessing)에 의해 1774년부터 1778년 사이에 7번에 나누어 출판되었고 전체 4000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는 함부르크 시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책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자연신교의 용인
이성을 비난하는 성직자들
모든 사람이 믿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계시의 불가능성
홍해를 건넌 유대인들
구약 성서는 종교를 드러내기 위해 쓰여지지 않았음을 입증함
부활 이야기에 대하여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목적


이 중에서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목적(The Aims of Jesus and His Disciples)"은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이 책은 비평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걸작이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천국과 복음의 의미

라이마루스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시작 지점으로 삼았다. 그는 "사도들이 쓴 글에 담긴 그들의 가르침과 예수 자신이 생전에 선포하고 설교한 내용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예수의 설교의 내용은 똑 같은 의미를 가진 두 어구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가복음 1장 15절)라는 말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장 7절)라는 말이다.

천국(Kingdom of Heaven)은 유대인의 사고 방식에 따라 이해해야만 한다. 예수나 세례요한은 이 단어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은 그 단어가 알려진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예수는 유대교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취했고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열망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천국의 본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믿음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복음, 즉 예수가 하느님의 왕국(Kingdom of God)을 가져오려고 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인용 부호는 라이마루스의 책에서 인용했음을 의미함. 이하 같음)

이미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며칠 만에, 아니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천 명이 그를 믿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예수가 약속된 예언자라는 말만 들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왕국이 오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내보냈을 때 그들이 하느님의 왕국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실은 그것 뿐이었다.

복음(Gospel)의 의미는 예수의 선도 하에 메시아의 왕국(Kingdom of Messiah)이 곧 온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복음을 듣는 유대인들에게 그가 메시아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 개념 속에는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없었다. 이스라엘 나라 자체가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유대인들의 왕들도 하느님의 아들들이었다. 또한 메시아는 가장 높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 속에서도 예수는 여전히 "인간의 한계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인 하느님의 아들, 삼위일체, 그리고 그와 유사한 교리적 개념들에 대해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유대인의 사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편견 없이 본다면 누구든 "예수는 유대교를 없애고 그 자리에 다른 종교를 세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마태복음 5장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를 보면 예수는 율법을 폐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적으로 율법을 바탕으로 하는 입장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설교에서 새로운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왕국을 위해 필요한 의로움이었다. 다가올 왕국의 시대에는 율법의 의로움만으로는 부족하며, 새롭고 더 엄격한 도덕성이 필요하다. 이 부분이 유일하게 예수의 설교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앞으로 나아간 점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덕성은 율법을 폐기하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예수의 신도들은 율법과 결별했지만, 그것은 예수의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대교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세운 것이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종족적 배타주의를 무조건적으로 공유했다. 마태복음 10장 5절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를 보면 그는 제자들이 이방인에게 하느님의 왕국이 오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명백히 그의 목적에는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개종을 정당화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세례식과 성찬식은 예수가 새로운 종교를 세우려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길기 때문에 생략함)

기적과 관련해서는, 예수가 정말로 기적적인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정말로 기적적인 일을 했다면 사람들이 표적(sign =징후)을 요구했다는 성서의 기록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예수의 메시아 자격에 대한 표적을 보여주기를 열렬히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가 단 하나만이라도 압도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기적을 행했다면 얼마나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을까! 아마 모든 사람들이 즉시 예수 앞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봉기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두 번이나 그는 그 날이 가까이 왔다고 믿었었다. 첫 번째는 그가 제자들을 내보내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라고 말했을 때였다. 그는 제자들이 설교를 시작하면 사방에서 그에게 모여들어서 자신을 메시아로 떠받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였다. 그는 스가랴서의 메시아 예언을 이루기 위해 당나귀 새끼 위에 타고 입성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라고 외쳤다. 이제 자신의 추종자들의 지지에 의존하여 권력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신전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항거할 것을 명령했다. 그들이 천국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수는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된 선동적인 설교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9) 이는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곧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며 맞이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에게 보내서 봉기하도록 촉구했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거절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사람들도 봉기할 것을 거부했다. 예수는 체포되기 전에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며 생을 마감했다.

예수의 이 마지막 외침은 하느님이 그가 희망했던 목적을 돕지 않았다는 의미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받으면서 죽는 것은 그가 목적했던 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지상의 왕국을 세우고 유대인들을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목적을 하느님은 돕지 않았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의 죽음은 그들이 예수를 따르며 꿈꾸어 왔던 모든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은 오로지 메시아의 친구이자 대리인, 그리고 이스라엘의 12 부족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였으며, 그들이 버린 것보다 백배 이상을 돌려받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러한 그들의 세속적 희망을 책망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의 그러한 믿음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 모든 사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꿈이 실현되는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6장 28절을 보면 예수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가 모든 메시아적 희망이 현 세대가 끝나기 전에 실현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자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미리 얘기했다면 그들은 예수의 죽음 앞에서 그렇게 겁장이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부활'에 대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어떻게 충격을 극복했는가? 그들은 유대인들의 메시아 희망의 두 번째 형태에 의존하였다. 지금까지 그들의 지배적인 사상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다윗의 후손으로서 나라를 정치적으로 구원하는 예언자의 정치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을 초자연적 세계로 옮긴 또 하나의 메시아적 기대가 존재했다.

이에 따르면 메시아는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인간의 형태로, 두 번째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망으로 첫 번째 희망이 무너지자 제자들은 두 번째 희망을 제시했고 메시아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공유하는 추종자들을 규합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 그 전까지 그들이나 예수 자신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영적인 구원의 의미를 부여했다.

제자들은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는 충실한 신자들을 모았고, 예수의 육체를 훔쳐서 숨기고 나서 예수의 육체를 찾더라도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50일을 기다린 후에 그가 곧 다시 돌아 올것이라고 온 세상에 선포했다.

따라서 원시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 보다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해서 탄생했던 것이다. 초기 교리의 주된 문제는 예수의 재림의 지연이었다. 이미 사도 바울의 시대에 예수 재림의 지연은 상당히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후서에서는 예수의 재림이 왜 늦어지는지에 대한 온갖 이유들을 늘어놓고 있다.

라이마루스의 업적

라이마루스의 연구 결과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서 가장 탁월한 성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사상이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종말론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설교를 지배한 메시아적 이상이 주로 정치적 통치자, 즉 다윗의 아들의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그 다른 모든 실수들은 이 기본적인 오류의 결과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시초가 기만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유추하기 위한 가설이었다.

라이마루스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그는 유대교에서 메시아적 희망에 두 가지 체계(인간으로서의 메시아와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메시아)가 나란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둘을 실제 역사 속에서 서로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는 와중에 그 둘을 동시적 관계가 아니라 순차적 관계에 놓는 실수를 했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로 인식했다는 사실에 비하면 이것은 사소한 과오이다.
그는 예수의 설교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정의가 없다는 사실과 그가 빠르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연구 문제라고 인식했으며, 예수가 종교적 창시자나 스승이 아니라 순수한 전도자(preacher)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그는 율법에 대한 예수의 태도와 그의 제자들이 좀더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게 된 과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현재의 역사학이 추가로 언급할 부분이 없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초기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성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과 상황의 결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원래 예수의 설교에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가 세례식과 성찬식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가 역사적 추측을 근거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예수가 치료의 기적을 행한 후에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과 제자들에게 전한 예수의 어떤 말들이 해결이 필요한 연구문제라고 생각했다.

라이마루스 이후 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까지 120년 동안 신학은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역사적 인물로서 예수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후대 유대교의 종말론적이고 계시적인 사상의 마지막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슈바이처 박사의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가 이미 대한기독교서회(www.clsk.org)에서 1986년에 <예수의 생애 연구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연재를 중단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절판된 것으로 표시되므로 지금도 구할 수 있는지는 출판사에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연재를 중단하는 대신 슈바이처 박사의 다른 신학 서적 중 1914년에 처음 출판되었던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 예수의 메시아직과 수난의 비밀(The Mystery of the Kingdom of God: The Secret of Jesus' Messiahship and Passion)>이라는 책은 아직 국문 번역본이 출판되지 않은 것 같으므로 이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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